■반 년간의 작은 휴식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동급생 몇 명하고 말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애써 말해보려 한 적도 있지만 결국 잘
안 되었지요. 한 학년에 두 반 밖에 없는데 말을 안 하는 동급생이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랍니다.
그 무렵, 집과 학교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에 대해 방황하게 되었어요. 학교에서는 자주성을 중시하거든요. 그러나 집에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부모님이 참견하시는 일이 많았어요. “나 좀 내버려 두세요”라고 해도 엄마는 간섭하시죠.
또, 어른이 하시는 말씀에는 따르는 거다, 집에서는 그렇게 배워왔어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한다고 배우니까
실제로 다들 상대방의 나이와는 관계없이 자기 의견을 주장합니다. 저는 어른에게 버릇없이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때문에 집에서도 제 의견을 말해버립니다. 제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않고 “됐으니까
빨리 해” 라는 말을 들으면 반발해버리고 말지요. 집에서 억눌림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집이 싫어지고
학교가 싫어지고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러한 일때문인지 어떤지 지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 그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어요. 이런저런 생각이랑 감정이 뒤섞여서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혼란한 상태가 되는 거예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이 부풀어가는 거였어요. 그럴 때에는 수업에 들어가는 일도, 친구가 걱정해 주거나 이유를 물어보는 것도 싫어서 상담선생님
방에 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이유를 물어보는 일 없이 그냥 “휴지 여기 있어요”라든지 “여기, 차 마셔요”라고 말씀하실 뿐 제가
우는 걸 조용히 지켜봐 주셨지요. 그러나 혼란한 상태는 계속 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10월에 휴학계를 냈습니다.
휴학중에는 카운셀러선생님께 가서 상담하거나 병원에서 카운셀링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운동을 하러 다니거나 가끔은
엄마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며 지냈어요. 휴학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저때문에 우셨던 것 같아요. 휴학중에는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저를 가만히 지켜보아 주셨답니다. 저도 하고싶은 일만 하며 지냈어요. 특히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는 일은 너무나
마음이 편했어요. 그리고 아야와 메구, 두 친구와 계속하고 있었던 편지교환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어요.
결국, 반 년 동안 휴학했습니다. 그 반 년 동안 뭔가 결실이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휴식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충실한 고등학교 생활
반 년 동안 휴학한 후에 한 학년 아래 학년에 복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버벅거렸지만 학교에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은
친구도 있었고, 저 자신 학급의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한 것도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학교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는
학생회, 클럽활동 등으로 바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고등학교 2학년 6월부터 1년간, 학생회에서 서기를 맡았어요. 학생회의 활동은 주로 문화제와 스포츠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입니다. 학생회에서 활동한 덕에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었지요. 또, 학생회의 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로 협력하는 일과 자기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는 일의 중요성, 그리고 때로는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 다른 사람을 통솔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 등을 배웠구요. 그리고 선생님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 뭔가를 해 냈을 때의 기쁨을 알게 된 일도 커다란 수확이었습니다.
카운셀러 선생님의 방에는 그 후에도 자주 가곤 해요. 지금은 뭐든지 말 할 수 있고, 저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건 싫다…”라는 내 입장에 선 반응 밖에 되돌아오지 않지만 선생님은 제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나서 부모님의
입장도 생각해서 말씀해 주시거든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어쩐지 얌전히 들을 수 있습니다.
■아주 좋아하는 것:스포츠
센리의 클럽활동은 시즌제여서, 시즌에 따라 활동내용이 바뀐답니다. 저는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지금까지 클럽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4월에서 6월까지는 배드민턴을, 9월에서 11월까지는 배구, 그리고 11월부터 1월까지는 축구를 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영과 트라이애슬론 밖에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다른 스포츠를 해 보고는 더욱 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APAC(Asia Pacific Activities Conference:한국, 중국, 필리핀과 일본의 인터내셔널 스쿨
6개교로 이루어진 스포츠 리그)에 배구와 축구멤버로 5번 나가서 우승과 상위입상을 했어요. 2학년 때 나갔던 APAC에서는 배구와
축구에서 올스타 멤버상을 받았는데, 너무나 기쁜 상이었답니다.
3학년 때, 교내 연간 스포츠상에서 최우수 스포츠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의 상장과 트로피는 저의 보물이랍니다.
올해는 수험생이라서 클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쉬워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운동도 스트레스해소에 빼 놓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올 여름에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하고 있는 시영 수영장의 교관을 했어요. 또 배구수업도 기다려집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저도 모르게 흥이 나요.
스포츠는 기쁨이나 슬픔, 긴장감, 자신의 능력부족, 팀웍이나 친구의 소중함,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공부도 그렇지만, 제가 노력하면 결과는 반드시 따르는 법입니다.
■두 개의 문화
센리에 다니는 학생들의 출신과 문화배경은 가지각색이지요. 국적은 몇 십개 국이나 됩니다. 센리에 들어오기까지 난 한국인이라는
데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지만 여러 가지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난 한국인이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 주장하게 되었답니다.
그래도 저는 “국적”이라는 것에 의문을 느껴요 예를 들면, 재일한국인*3
3세처럼 태어난 나라와 국적이 다른 경우, 저는 엄마가 한국 태생이라서 다른 사람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3세들은 한국에 가 본 적도 없을 뿐더러 한국말을 할 줄도 모르거든요. 아무리 국적이 한국이라고 하더라도 실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나라 사람”이 아닌 “~문화속에 자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우리 동네의 공립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집 밖의 세상은 “일본”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한국의 문화, 한국의 사고방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집 안은 “한국”이었습니다. 제 속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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