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토리
유유진
ユゥ ユゥジン


난 이런 사람
 

 호기심이 왕성하답니다. 맘에 들거나 흥미를 느끼면 잠도 안자고 달라붙어요. 하지만 흥미를 느낄 수 없는 것에는 전혀 시간을 들이지 않지요. 안 하면 안 되는 일은 억지로 합니다.
 저는 틀에 박힌 이미지로 보이는 것이 싫어요. 그래서, 일부러 그런 이미지를 확 바꾸는 듯한 일을 하기도 한답니다.
 보통은 명랑하고 활발하지만 한번 무슨 일로 기가 죽으면 생각도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하게 되고, 기분이 축 처져버릴 때가 있어요. 그런가하면, 반대로 아무렇지도 않을 때도 있답니다.

 

성장과정
 

■어렸을 때
 저는 1981년 오사카*2 에서 태어났습니다. 갓 태어난 저를 보고 아버지는 “눈이 참 크구나.”하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인형놀이도 했지만,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는 무릎에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던 걸 지금도 기억하지요.
 유치원 무렵에 배드민턴과 수영을 시작했어요. 휴일에는 공원에서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거나 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했어요.

■초등학교 때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였답니다.
3학년인가 4학년 때에 엄마를 따라서 센리국제학원*1(이하, 센리)에 전학하기 위한 면접시험을 보러 갔답니다. 센리는 인터내셔널스쿨도 같이 있어서, 학생의 국적과 문화배경도 가지각색이랍니다. 엄마는 그런 환경에서 공부시킴으로써 제가 넓은 시야를 가진 인간이 되어주기를 바라셨던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센리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고 흥미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학교에 들어오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하는 면접관의 질문에 “우리 엄마가요…”라고 대답하고 말았답니다. 이것이 원인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결국 시험에 떨어졌어요.

■중학교 때
 초등학교 고학년때 3년정도 영국에 가 있던 마이라는 소꿉친구가 귀국해서 센리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마이에게서 학교에서의 즐거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당시, 제가 다니게 되어 있던 통학 구역(학군) 안의 공립중학교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점과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센리의 중등부 입학시험을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반대하셨어요. 그 때, 언니가 “시험만 봐도 되잖아”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시험을 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붙었답니다. 어째서 아버지가 반대하셨는지 이유는 몰라요. 그 때 뿐만이 아니라 제가 뭔가 하려고 하면, 아버지는 처음에는 꼭 반대하신답니다. 반대하시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양해를 얻어내는 일이 자주 있어요. 그 당시에는 어째서 저렇게 반대하시는 걸까 하고 싫어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한다고 기가 꺾이면 안된다”는 뜻이 아닐까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때도 스포츠는 저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어요. 2학년때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시영 수영장에서 교관 자격증을 땄습니다. 학교에서는 트라이애슬론클럽에서 활동했어요. 학교에 결석한 일도 거의 없는 활기찬 중학생이었지요.

 

고등학교 생활
 

■반 년간의 작은 휴식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동급생 몇 명하고 말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애써 말해보려 한 적도 있지만 결국 잘 안 되었지요. 한 학년에 두 반 밖에 없는데 말을 안 하는 동급생이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랍니다.
 그 무렵, 집과 학교의 사고방식이 다른 것에 대해 방황하게 되었어요. 학교에서는 자주성을 중시하거든요. 그러나 집에서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부모님이 참견하시는 일이 많았어요. “나 좀 내버려 두세요”라고 해도 엄마는 간섭하시죠. 또, 어른이 하시는 말씀에는 따르는 거다, 집에서는 그렇게 배워왔어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한다고 배우니까 실제로 다들 상대방의 나이와는 관계없이 자기 의견을 주장합니다. 저는 어른에게 버릇없이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게 때문에 집에서도 제 의견을 말해버립니다. 제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않고 “됐으니까 빨리 해” 라는 말을 들으면 반발해버리고 말지요. 집에서 억눌림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집이 싫어지고 학교가 싫어지고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러한 일때문인지 어떤지 지금도 확실히는 모르지만 중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부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면 그치지 않을 때가 자주 있었어요. 이런저런 생각이랑 감정이 뒤섞여서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혼란한 상태가 되는 거예요.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이 부풀어가는 거였어요. 그럴 때에는 수업에 들어가는 일도, 친구가 걱정해 주거나 이유를 물어보는 것도 싫어서 상담선생님 방에 가 있었어요. 선생님은 이유를 물어보는 일 없이 그냥 “휴지 여기 있어요”라든지 “여기, 차 마셔요”라고 말씀하실 뿐 제가 우는 걸 조용히 지켜봐 주셨지요. 그러나 혼란한 상태는 계속 되었고 고등학교 1학년 10월에 휴학계를 냈습니다.
 휴학중에는 카운셀러선생님께 가서 상담하거나 병원에서 카운셀링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운동을 하러 다니거나 가끔은 엄마하고 배드민턴을 치기도 하며 지냈어요. 휴학하게 되었을 때 엄마는 저때문에 우셨던 것 같아요. 휴학중에는 가끔 싸우기도 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저를 가만히 지켜보아 주셨답니다. 저도 하고싶은 일만 하며 지냈어요. 특히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는 일은 너무나 마음이 편했어요. 그리고 아야와 메구, 두 친구와 계속하고 있었던 편지교환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어요.
 결국, 반 년 동안 휴학했습니다. 그 반 년 동안 뭔가 결실이 있는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휴식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충실한 고등학교 생활
 반 년 동안 휴학한 후에 한 학년 아래 학년에 복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좀 버벅거렸지만 학교에는 예전부터 사이가 좋은 친구도 있었고, 저 자신 학급의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한 것도 있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학교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는 학생회, 클럽활동 등으로 바쁘고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고등학교 2학년 6월부터 1년간, 학생회에서 서기를 맡았어요. 학생회의 활동은 주로 문화제와 스포츠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입니다. 학생회에서 활동한 덕에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었지요. 또, 학생회의 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로 협력하는 일과 자기의 생각을 확실하게 말하는 일의 중요성, 그리고 때로는 타협도 필요하다는 것, 다른 사람을 통솔하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 등을 배웠구요. 그리고 선생님과 친해질 수 있었던 것, 뭔가를 해 냈을 때의 기쁨을 알게 된 일도 커다란 수확이었습니다.
 카운셀러 선생님의 방에는 그 후에도 자주 가곤 해요. 지금은 뭐든지 말 할 수 있고, 저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그건 싫다…”라는 내 입장에 선 반응 밖에 되돌아오지 않지만 선생님은 제가 하는 말을 다 듣고 나서 부모님의 입장도 생각해서 말씀해 주시거든요.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어쩐지 얌전히 들을 수 있습니다.

■아주 좋아하는 것:스포츠
 센리의 클럽활동은 시즌제여서, 시즌에 따라 활동내용이 바뀐답니다. 저는 고등학생이 되고나서 지금까지 클럽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4월에서 6월까지는 배드민턴을, 9월에서 11월까지는 배구, 그리고 11월부터 1월까지는 축구를 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영과 트라이애슬론 밖에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다른 스포츠를 해 보고는 더욱 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APAC(Asia Pacific Activities Conference:한국, 중국, 필리핀과 일본의 인터내셔널 스쿨 6개교로 이루어진 스포츠 리그)에 배구와 축구멤버로 5번 나가서 우승과 상위입상을 했어요. 2학년 때 나갔던 APAC에서는 배구와 축구에서 올스타 멤버상을 받았는데, 너무나 기쁜 상이었답니다.
 3학년 때, 교내 연간 스포츠상에서 최우수 스포츠 선수상을 받았습니다. 그 때의 상장과 트로피는 저의 보물이랍니다.
 올해는 수험생이라서 클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쉬워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운동도 스트레스해소에 빼 놓을 수 없거든요. 그래서 올 여름에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하고 있는 시영 수영장의 교관을 했어요. 또 배구수업도 기다려집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저도 모르게 흥이 나요.
 스포츠는 기쁨이나 슬픔, 긴장감, 자신의 능력부족, 팀웍이나 친구의 소중함,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공부도 그렇지만, 제가 노력하면 결과는 반드시 따르는 법입니다.

■두 개의 문화
 센리에 다니는 학생들의 출신과 문화배경은 가지각색이지요. 국적은 몇 십개 국이나 됩니다. 센리에 들어오기까지 난 한국인이라는 데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지만 여러 가지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 속에서 난 한국인이라는 것을 마음 속으로 주장하게 되었답니다. 그래도 저는 “국적”이라는 것에 의문을 느껴요 예를 들면, 재일한국인*3 3세처럼 태어난 나라와 국적이 다른 경우, 저는 엄마가 한국 태생이라서 다른 사람의 경우와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3세들은 한국에 가 본 적도 없을 뿐더러 한국말을 할 줄도 모르거든요. 아무리 국적이 한국이라고 하더라도 실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나라 사람”이 아닌 “~문화속에 자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유치원, 초등학교를 우리 동네의 공립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집 밖의 세상은 “일본”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주로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한국의 문화, 한국의 사고방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집 안은 “한국”이었습니다. 제 속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장래에 대하여
 

 중학교에 들어가면 신입생은 모두 카운셀러 선생님과 면접을 하게 되는데, 그 때 처음으로 카운셀러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선생님에 대한 동경도 있었기 때문에 카운셀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지요.
 고등학교 3학년 가을,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APAC에 출전할 수 없었던 것이 억울해서 울어버리고 말았어요. 그 무렵, 카운셀러 선생님에게서 미국의 프로골퍼인 타이거우즈에게 스포츠 카운셀러가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나는 겨우 학교의 클럽일만으로도 이렇게 억울해서 울게 되고 낙심하게 되는데 프로 스포츠선수라면 그 괴로움은 얼마나 클까 하고 생각했지요. 경기종목에 따라 힘든 것도 다를 것이다고 생각해요. 저는, 센리에 들어와서 여러 종류의 스포츠를 했고 또 슬럼프에 빠져 힘들어하기도 했어요. 그 경험을 살리고 싶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스포츠를 평생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포츠 카운셀러가 되겠다”라는 목표가 생겼답니다.
 먼저 일본의 대학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하고나서 스포츠카운셀링 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의 대학원에 유학하는 것이 꿈입니다. 공부… 좋아하는 지 싫어하는 지 누가 묻는다면 싫어한다고 대답할 것 같아요. 하지만, “빛나는 미래”를 위해 노력할 거예요.

 

가족, 친구
 

■우리 가족
 아빠, 엄마, 언니 둘, 그리고 나 이렇게 5인 가족입니다.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가족의 영향이에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야구팀에 속해 계시구요, 엄마는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중거리 육상선수로 한국의 전국체전에도 출전한 일이 있을 정도인데 일본에 와서부터는 쭉 배드민턴을 하고 있어요. 큰 언니는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배드민턴선수로 추천*4 을 받아서 들어갔습니다.
 우리집에서 야단치는 사람은 엄마랍니다. 아빠가 야단치시기 전에 엄마가 야단을 치세요. 아빠는 엄마가 그러시는 걸 보고 계시기 때문에 별로 야단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나시면 아주 무서워요. 가족중에서 제대로 야단칠 사람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우리집은 지나치게 엄하고, 애들한테 너무 연연해하는 편이예요. 예를 들면 큰언니는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늦게 들어온다고 아버지는 잔소리를 하세요. 집에서 너무 그러면 나중에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에 어찌될까 걱정입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너무 엄하다고 느끼긴 하지만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건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있어 가족은 따뜻한 존재입니다.

■나의 친구들
 친구들에게 싫다고 느끼거나 그 친구가 그른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 때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 자리에서 말하도록 하고 있어요. 딱부러지게 말을 하기 때문에 울며 싸우는 일도 있지만 그러는 편이 깨끗해서 좋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없는 곳에서 흉을 보는 것은 싫거든요. 친구들과 늘 붙어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대신, 만났을 때에 될 수 있으면 마음껏 즐기고 싫은 소리를 하거나 싫은 얼굴을 하지 않도록 하지요.
 친구들과 있으면 맘이 편합니다. 매일 만나도, 오랜만에 만나도, 가족과는 다른 따스함과 마음씀씀이가 있어서 마음이 차분해져요.

 

우리 고장
 

 제가 사는 히가시오사카시*5 는 오사카의 번화가에서 전철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오래된 주택가입니다. 중학교 때부터 오사카의 북부인 미노시*6 센리에 있는 센리국제학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네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학교 주변의 공원이나, 자주 놀러가는 난바 쪽이 익숙해요.
 난코는 자주 간다고 할 수는 없지만 좋아하는 장소랍니다. 깨끗한 바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바다를 보고 있으면 수평선에 감동하기도 하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기분이 되기도 해서 언제까지나 바다를 바라보며 있고 싶어져요.

 

유진이는 어떤 사람?
 

■아버지
 어릴 때도 지금도 성격은 별 변함없이 밝고 씩씩하고 활발하며 스포츠를 잘 하는 아이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주적으로 행동합니다. 주위사람에게 “이걸 해라, 저걸 해라”하는 말을 들으면 반대로 아무 것도 안 하는 면도 있습니다.
 장점은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점, 남을 챙길 줄 아는 점입니다. 다만, 너무 지나쳐서 주위와의 조화를 잊어버리는 일이 있으니까 가끔 주위에도 신경쓰면서 자기자신을 바라보아 주기를 바래요.
 가족 중에서는 가장 말이 많은 존재입니다만 그것도 이 아이의 특성일 거예요. 집에 돌아오면 유진이가 있는지 없는지 제일 먼저 물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보다도 눈에 띄게 뭔가를 잘 한다기 보다는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 가짐으로 사회, 단체생활 속에 참여해 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다른 사람을 위해 지도자같은 역할을 해 나가거나 자기의 존재가치를 발휘해 주었으면 합니다. 또 사회인으로서,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에서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YY-P08참조)
유진: 그렇게 말이 많은 편인가…

■친구 에리
 친구가 된 계기가 특별히 있었던 것은 아니구요. 같은 반인데다 funky한 사람이라 자연스레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유는 슈퍼 자기중심형이라기 보다는 하이페이스(강경하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타입). 무슨 일이든 옳고 그름, 흑백을 밝힙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좋아하고 싫은 사람이나 싫은 일에는 확실하게 자기기분을 나타낸다. 그래도 제대로 사회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겠어요? 라고 할까… 잘 울어요.(웃음)
 나와 비슷한 점은 씩씩!한 점. 무엇이든 철저히 즐길 줄 아는 힘을 갖고 있다. 나와 다른 점은 부모님 등에게 충실하다는 점. 도가 지나치지 않은 점.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인가 묻는다면 <동료>라 할 수 있겠네요. 그리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이지만 마음은 늘 통하고 있지요. 같이 있을 수 있지! 내가 앞으로 오사카를 떠나더라도 오사카에 돌아오면 만나고 싶은 “집”같은 존재. (YY-P11참조)
유진: 에리의 하이페이스야말로 못 당해! 에리도 나에게 있어서는 “집”같은 존재!!

■카운셀러 선생님
 마음이 약해진 사람을 격려해 주고 힘이 나는 말을 해 주는 아이라고, 카운셀링실에 오는 학생들이 말합니다. 모두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켜주는 마음씨 너그러운 아이예요. 학생회활동도 아주 열심이었어요. (YY-D12참조)

 


 

*1 센리국제학원 중등부・고등부(SIS)는 해외귀국자녀,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립학교. 문부과학성이 규정하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한 교육이 행해지고 있다. 같은 울타리 안에 병설되어 있는 오사카인터내셔널스쿨(OIS)은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영어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SIS와 OIS는 음악과 미술 등 수업의 일부분과 학생회 활동 등을 합동으로 실시하고 있다. 센리국제학원의 고교과정에서는 봄 가을 겨울의 학기단위로 학습이 완결되고 학기마다 과목이수를 융통성있게 조절할 수 있다. 일본의 많은 고등학교와는 달리, 교칙이 없고 복장이며 소지품도 학생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2 혼슈 중앙부에 위치한다. 도읍이 있었던 나라, 교토에서 세토나이카이쪽으로 뻗은 출구라는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 옛날부터 일본의 중심지로 발달해 왔다. 에도시대(1603~1867)에는 전국에서 쌀과 특산물을 들여오는 “일본의 부엌”으로 불리기도 했다. 메이지시대 이후로도 서일본경제의 중심지로서 교토, 고베 등과 함께 게이한신 대도시권을 이루고 있다. 인구 약8,812,000(2001년). 사진시트 지도 참조.

*3 일본에 정주하는 한국, 조선인의 대부분은 1910년 한일합방으로부터 1945년에 제2차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에 건너온 사람들과 그 자손이다.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본으로 “강제연행”되었다. 재일 한국,조선인의 정확한 인구는 밝혀져있지 않으나 종전 후 일본에 남은 한국, 조선인의 자손으로서 현재도 한국, 조선국적을 소지한 사람은 약 65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일본에서 태어난 2세, 3세이다. 또, 일본에 귀화한 사람과 그들의 가족, 재일한국인,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태어난 사람 등을 포함하면, 200만 명 이상이 된다고도 한다.

*4 [고등학교 추천입학 입시] 통상적으로 행해지는 학과시험없이, 중학교장 추천과 내신성적, 면접, 소논문과 학업이외의 실적(스포츠 등)등에 근거하여 수험생의 입학여부를 고등학교가 직접 판단하는 입시제도
[대학 추천입학 입시] 수험생의 출신고등학교장의 추천을 근거로 조사서, 면접, 소논문 등을 종합적으로 판정하여 대학측이 일정수에 한해 입학을 허가하는 제도

*5 오사카시의 동쪽에 위치한 위성도시. 인구 약 515,000(2001년). 사진시트 지도 참조

*6 오사카부 북부의 시. 오사카에서 북쪽으로 16k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베드타운으로 발전했다. 인구 약125,000(2001년)

*7 어떤 과목을 1주일에 한시간, 일년 내내(35주간) 배우면 1단위가 된다. 예를 들면 일년간 주 2시간짜리 과목이라면 2단위로 인정한다.

*8 단위제 고등학교에서는 3년이상 재학하면서 80단위(2003년도부터는74단위)이상 취득하면 졸업할 수 있다. 학생이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필수과목 이외에는 자신의 학습계획에 따라서 희망하는 요일, 시간에 자기가 관심있는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다.

*9 Scholastic Assessment Test를 가리키는 말. SAT는 미국에서 4년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되고 있는 전국공통테스트이다. 대학수업에 따라갈 수 있는 학력이 있는지 어떤지를 보는 시험이다. 대학합격불합격은 보통 SAT득점 이외에도 에세이, 지금까지의 학업성적, 수험생의 개성 등을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논리적 사고력을 보는 SAT1과 학과시험인 SAT2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