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토리
야마모토 다카유키
やまもと たかゆき


난 이런 사람
 

 웃는 얼굴이 매력인 보통 사람이라 생각해요. 꽤 고지식한 구석이 있구요. 미식축구도 여자친구도 한 번 빠지면 일편단심입니다. 스스로 정한 일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죠. 기본적으로는 냉정하기 때문에 시합에서 뭔가 잘 못 했거나 팀이 불리한 상황이 되어도 침착한 편입니다. 감정적으로 흐르는 일도 거의 없어요. 긍정적인 성격으로, 남한테 무슨 말을 듣고 일시적으로 고민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멀쩡합니다. 그래서 난청이라도 힘들어 하거나 슬퍼하지 않고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난청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 자신도, 난 힘들지 않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 온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난청인 것을 의식하면 힘겹기만 할 뿐,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주위 사람들이 저를 도와 줍니다. 또한, 비관적으로 살면 애써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미안한 일입니다.
 단점은 흐리멍텅한 구석이 있는 것. 초, 중학교의 성적통지표에는 언제나 “자기 주변의 정리정돈을 할 줄 모름”이라고 써 있었어요. 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하는 타입이므로, 친구가 놀러 올 때는 방을 정돈하죠

 

성장과정
 

■어렸을 때
 1982년에 교토*1에서 태어났어요. 꼬마였을 때는 개구쟁이였던 것 같습니다. 이웃에 나이가 위인 아이들이 많아서 그 아이들과 언제나 밖에서 놀았어요.
 난청이라는 것을 안 것은 1살 때였어요. 유치원은 집에서 버스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농아학교의 유치부에 다녔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무렵의 어린 아이들은 매일 즐겁게 놀면서 지내는 것이 보통일 거예요. 하지만 저의 유치원 시절은 매일매일이 공부의 연속이었어요. 유치원에서 철저히 발음훈련을 받았죠. 집에 돌아와도 엄마의 특별훈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발음연습은 정말로 엄하고 괴로웠기 때문에 울면서 했던 생각이 나요. 훈련에서 배운 것은 표준어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간사이 사투리는 미식축구를 시작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다보니 자연히 배우게 되었어요.

■초등학교 때
 난청반이 있는 학교에 다녔어요. 그 반에는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전부35명 정도 있었어요. 체육과 급식*3 시간에는 다른 반 아이들과 같이 활동을 했어요. 초등학교에서 생긴 일 중에 가장 큰 것은 미식축구와의 만남이에요. 초등학교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리 학교에는 미식축구팀이 있었어요. 상급생들이 연습하는 게 멋있어 보여서 3학년 때 팀에 들어 갔어요. 5학년 때에는 지역 리그전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결국, 우승은 할 수 없었지만 아주 기뻤었던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미식축구를 알게 된 후, 저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미식축구가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재능을 끄집어내 주었어요. 감독님은 “다카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 하셨지만 저는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제 자신이 운동신경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또, 미식축구팀의 친구들과 접하면서, 친구들과 지내는 법, 말하는 법 등,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죠. 미식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말을 그리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어요. 싸울 때에도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손이 먼저 나가 버리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구요. 미식축구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런 일도 없어졌어요. 만약 제가 귀가 들리는 아이여서 집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다녔다면 미식축구와의 만남은 없었을 지도 모르죠. 미식축구는 나의 인생에서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난청이어서 잘 됐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선생님들 중에는 지금도 은사로 여기는 분이 계세요. 한 분은 미식축구팀의 감독이었던 선생님. 미식축구의 즐거움과 엄격함을 가르쳐 주셨지요. 작은 몸집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시합의 승패에 따라 함께 울고 함께 웃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어요. 하지만, 연습은 아주 엄했습니다. 선생님은 초등학생이라고 봐주시는 일도 없는데다 귀신처럼 화를 내시는 일도 자주 있었죠. 진정한 스포츠를 하는 데 있어서는 그저 즐겁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는 미식축구를 그만두었을 지도 몰라요. 저의 가장 소중한 은사입니다. 또 한 분은 1학년과 5, 6학년 때의 저의 담임선생님입니다. 저를 자식처럼 귀여워해 주시는, 마치 엄마와도 같은 존재였지요. 지금도 가끔 선생님 댁에 놀러 갑니다.

■중학교 때
 초등학교 근처의 난청반이 있는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난청반 교실에는 외부잡음을 막는 설비가 갖춰져 있었어요. 여름에도 창을 닫을 수 있도록 에어콘도 달려 있었어요. 난청이 있는 사람들은 교실 안의 소리와 교실 밖에서 들려 오는 소리를 구별 못 해요. 보통 교실이면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어려우니까요. 만약 중학교를 일반학교에 들어갔더라면 수업에 못 따라갔을 지도 몰라요. 지금과 달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에는 미식축구팀이 없었기 때문에 교토시내의 클럽팀에 들어갔구요. 지역리그에서 MVP로 뽑힌 일도 있을 만큼, 꽤 활약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농구부에 들어갔기 때문에 평일에는 농구를, 주말에는 미식축구 연습을, 이렇게 스포츠로 시작해서 스포츠로 끝나는 나날이었죠. 학교성적은 좋은 편이었구요. 공부는 싫어하지만 궁지에 몰리면 하는 타입이므로 시험 전이 되면 열심히 공부했었죠.

 

고등학교 생활
 

■오사카 산업대학 부속고등학교로
 집에서 학교까지 전차를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이나 걸립니다.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강한 팀에서 미식축구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미식축구 잡지의 기사에서 오사카산업대학부속고등학교에 미식축구팀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 후, 그런 강한 팀에서 미식축구를 해보고 싶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중학교 3학년 때 스포츠 추천에 도전해서 합격, 오사카산업대학 부속고등학교의 스포츠코스*4 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모든 수업을 일반학생들과 같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미식축구 친구들과의 사귐을 통해 의사소통에 있어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있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도 전혀 불안은 없었어요. 실제로 아무런 문제도 없이 즐거운 고등학교 생활을 해 왔어요.
 우리 학교는 교칙이 꽤 엄한 학교라고 생각해요. 특히 복장에 관해서는 엄해서 예를 들면 가죽구두를 신지 않으면 절대 안 됩니다. 좀 더 자유로웠으면 좋을 텐데..하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고등학교 생활은 어쨌든 미식축구 중심의 연속이어서, 지금까지를 되돌아 보면 생각나는 것은 온통 그것에 대한 것 뿐입니다.

■아메리칸 풋볼(미식축구)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10년간 미식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중학교까지는 디펜스와 오펜스 양쪽을 다 하고 있었어요. 나는 태클에 동경심을 품고 있었지만 초,중학생에게는 태클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대신에 터치를 했어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태클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중간에 희망을 해서 태클을 할 수 있는 디펜스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세이프티(DB)라고 하는 포지션이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코치선생님이 권하시는 코너백(DB)으로 바꿨어요. 코너백은 판단력, 빠른 발, 캐치센스, 체력 등, 여러 가지 능력이 요구되는 포지션이에요. 코너백은 상대팀의 와이드리시버와 맨투맨으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서로 볼을 다툽니다. 그 때 내가 인터셉트를 하면 시합의 흐름은 크게 바뀌게 돼요. 그런 점이, 코너백의 재미있는 점이죠. 2학년 때 시합에서 많은 인터셉트를 하면서 활약했어요. 그때부터 점점 더 미식축구가 재미있어졌어요. 코너백으로 바꾸고나서 내 능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이 포지션은 저에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미식축구는 박력이 있는, 남자다운 스포츠라 생각해요. 태클을 했을 때 헬멧이랑 유니폼이 서로 부딪혀서 끼익- 하는 메마른 소리가 납니다. 실제로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지만 진동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거예요. 눈앞에 별이 번쩍거릴 만큼 아프지만 그 `메마른 소리`의 느낌이 좋아요.
 저는 난청이라고 특별대접을 받는 걸 싫어해요. 저 자신도 보통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에 미식축구팀 안에서 저만 특별대접을 받은 일이 있었어요. 저자신은 다른 사람과 평등하고 싶었고, 사람들이 보통사람과 나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해 주길 바랐기 때문에 아주 괴로웠어요. 고등학교의 팀에서는 그런 일은 전혀 없어요. 다들 보통으로 대해 주고 감독이나 코치선생님도 다른 애들하고 똑같이 대해 주세요.
 미식축구를 하면서 핸디캡을 느낀 적은 거의 없었어요. 작전지시는 말로 전달되지만 팀 친구들이 나를 위해서 브록사인(제스쳐로 보내는 사인)을 고안해 주었죠. 그래도 한 번, 2학년 때의 전국대회에서 경기중의 작전변경이 나에게만 전달되지 않은 일이 있었어요.. 경기전개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저에게 전할 시간이 없었던 거죠. 그 때 저는 팀 친구들하고는 다르게 움직이고 말았기 때문에 상대에게 점수를 빼앗겼어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제일 분했던 일입니다. 한편,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일도 미식축구에 관한 일이에요.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2년연속 전국우승을 달성한 일이에요. 진짜 멋진 추억입니다.

 

장래에 대하여
 

 대학생이 되더라도, 사회인이 되더라도 미식축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인정받는 완벽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달리기, 웨이트트레이닝을 해서 스피드를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미식축구팀이 강한 대학에 추천으로 입학할*5 수 있게 되었어요. 사회인이 되어서도 강한 팀에서 미식축구를 계속 할 수 있게끔 대학에서 활약하고 싶어요. 파워가 전혀 달라서 좀 겁이 나긴 하지만 기회가 있다면 미식축구의 왕국인 미국에서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가족, 친구
 

■우리 가족
 부모님과 누나, 저 이렇게 4인 가족입니다. 부모님은 생선가게를 하세요. 보통 때는 두 분 다 바쁘시기 때문에 천천히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죠. 저는 클럽활동이 있어서 집에 늦게 돌아오기 때문에 저녁도 혼자 먹어요. 그렇지만 가족간에 사이는 아주 좋아요.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이것저것 간섭하시지 않습니다. “자기 일은 자기가 해라”라고 하세요. 저도 부모님의 그런 자세를 좋아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가족은 같이 있어서 가장 편한 존재입니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게다가 미식축구를 응원해 주시거나 건강면에서 여러가지로 신경써 주시죠. 가족은 저의 기둥입니다.

■나의 친구들
 저는, 한정된 사람들과 친밀하게 사귀는 것 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폭넓게 사이좋게 사귀고 있어요. 친구를 사귀는 건 즐거운 일이고, 장래를 위한 일이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서로 말할 수 있고 언제나 곁에 있어 주는, 그런 친구가 많아요. 친구들은 저를 잘 이해해 주고 곤란할 때 언제든 도와주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친구가 없다면 뭔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더 어려움에 빠지게 되죠. 게다가 친구가 없으면 즐겁지 않아요. 난청을 가진 사람이 혼자서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기는 어려운 일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가 나서서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친구도 늘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여자친구에 대한 이상은 아주 높아요. 머리카락은 중간정도로 긴 머리에 내 패션에 어울리는 사람. 순진한 성격에 나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제일입니다.

 

우리 고장 교토
 

 교토는 오래된 절이 남아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집 가까이에는 산이 많고 아무 것도 없어서 시골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하지만 조용하고 깨끗하고 오래된 건물도 많이 남아 있는, 아주 좋은 곳이라 생각해요. 사람들도 활기가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 교토는 뭐니뭐니 해도 마음이 안정되는 곳입니다. 4월부터는 교토를 떠나 오사카의 대학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할 예정이에요.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어디까지 할 수 있을 지를 시험할 기회이므로 아주 기다려져요.

 

다카는 어떤 사람?
 

■어머니
 마음이 착하고 누구에게나 귀염받는 아이입니다. 큰아이와 마찬가지로 다카도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꽤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귀가 안 들리는 사람끼리 둘이서 힘을 모아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실제로, 누나하고는 사이가 좋아서 뭔가 있으면 누나한테 이야기합니다. 애 키우는 데 있어서 무슨무슨 주의는 특별히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아이의 자주성에 맡기고 있어요. (YT-P09참조)

■아버지
 지금까지 “어째서 나만 귀가 안 들리는 거야.”하는 말을 다카에게 들은 적이 없어요. 그는 그 나름대로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로서도 보통의 아이라 생각하고 키웠습니다. 학교성적은 신경써 본 일도 없습니다. 성적이 좋고 나쁜 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몸 건강하고 나쁜 일만 안 하면, 그걸로 족합니다. 다카가 생선가게를 이어받았으면 하는 생각도 전혀 없어요. 장래의 일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YT-P09참조)

■미식축구부의 다케다코치
 미식축구 선수 중에는 여러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만 다카는 머리로 플레이하는 타입입니다. 이미지트레이닝에 근거해서 움직이는 화려한 플레이입니다. 다카는 실력이 있으니까 2학년 맨처음부터 레귤러였지요. 저도 다카와 같은 코너백이었기 때문에 맨투맨이 되어 이런저런 것을 가르쳤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금방 물어보러 오고, 말귀도 빨리 알아들었지요. 밝은 성격에다 누구에게나 아주 솔직하고 친절합니다. 다카가 일본 제일의 코너백이 되어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이대로 계속 열심히 노력하면 꼭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YT-P12참조)

■미식축구부의 야마자키 감독
 미식축구에 대한 소질은 충분히 있으므로, 지금처럼 계속 노력하면, 사회인이 되어서도 활약해 갈 수 있을 겁니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하는 성격이고 후배도 잘 챙기고. 한편으로는 엉성한 구석도 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한 때,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서 떠받들어진 일이 있습니다. 맨처음에는 그 아이가 일반학생 이상으로 열심히 하니까 매스컴에 점점 더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격려도 되지 않을까 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시합이 있는 경기장에서 사인을 요구받거나 학교에 팬레터가 오거나 하면 “나는 대단하다”고 착각을 해 버릴 지도 모릅니다. 겨우 고등학생인데 떠받들어 주면 누구라도 그리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걸 단속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착각하지 마라. 주변 모두의 덕이니까”라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다카가 다른 팀원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됩니다. 저에게 야단맞는 다카의 모습을 보면 다들 수긍을 하고 불만은 없어지는 겁니다. 다른 부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존재가 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YT-P12참조)

■미식축구부의 친구들
A: “친절하고 후배를 잘 챙긴다”
다카: 사람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후배에게 플레이를 가르쳐 줄 때에도 상냥하게 말하거나 칭찬하면서 능력을 키워주려고 생각합니다.

B: “믿음직한 미식축구 선수”
다카: 남에게 신뢰받는다는 건 기쁘다. 더욱더 신뢰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

C: “약간은 자뻑(나르시스트)”
다카: 그냥 거울보고 머리 모양을 고친 것 뿐인데 그런 소릴 들어요. 난 자뻑이 아니라니까!

D: “좀 자기중심적!”
다카: 어디가 그렇다는 건지 알 수가 없네여…

 


 

*1 [교토시]교토부 남부의 도시. 일본의 옛 도읍지로서, 서기794년에서 1868년까지 황궁이 있었다. 대도시 중의 하나로, 수많은 사적이 남아있다. 직물 등 전통적 공예품으로도 잘 알려진 근대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인구 약 1,468,000명(2001년 현재). 사진시트의 지도 참조.
[교토부]남쪽은 오사카에 접한 부(일본의 행정구역 단위)로서 서기794년 이래 교토는 오랫동안 일본의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다. 남부는 게이한신(교토, 오사카, 고베) 대도시권에 속하며, 개발이 진행되어 과밀한 반면, 북부에서는 과소화가 진행되는 등 남부와 북부 간의 격차가 생겼다. 인구 약 2,645,000명(2001년). 사진시트 지도 참조.

*2 각 학기 마지막에 학생 개인의 학업성적, 태도, 출결석, 신체상황 등에 대해 학교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통지하는 서류.

*3 공립 초,중학교와 양호학교, 농아학교, 맹아학교에서는 점심식사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야간 정시제 고등학교에서는 저녁식사를 준비해 준다. 어린이와 학생들은 급식에 드는 비용을 일부 부담한다. 고등학교에서는 보통 도시락을 싸오거나 학교안 매점이나 가까운 가게에서 사 온 것으로 점심을 먹는다.

*4 오사카산업대학부속고등학교에는 보통과에 특진코스(문과, 이과), 종합코스(문과, 이과), 스포츠코스가 있다. 스포츠코스에서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운동능력을 높이는 동시에 체육이론을 배운다.

*5 수험생의 출신고교장으로부터의 추천을 바탕으로, 대학측이 조사서, 면접, 소논문 등을 판정하여 일정수에 한해서 대학입학을 허가하는 제도.

*6 1989년에 창립된 사회인아메리칸풋볼의 강팀.

*7 교토부와 시가현 경계에 있는 산. 동쪽 중복에는 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서기788년에 창건된 엔료쿠지가 있다.

*8 불교 임제종의 사원, 금각사의 원래 명칭은 로쿠엔지이다.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1397년에 세웠다. 금각은 3층으로 되어 있으며 기둥과 벽이 금박으로 되어있다.

*9 다이몬지야키(큰 대(大)자 태우기)라고 하는 행사가 열리는 산. 8월16일에 교토에서는 다섯 곳의 산에서 히오쿠리(불지르기, 산에 불 놓기)가 행해지는데, 이것은 오봉(선조의 산소를 찾아 조상의 명복을 비는 행사)이 시작될 때 맞아들인 망자(돌아가신 선조)의 혼을 돌려보내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큰 대(大)자 이외에도 묘(妙)자, 법(法)자 모양이나, 지펴진 불이 배모양으로 번져나가게 만든 것도 있다.

*10 조상의 명복을 비는 불교행사. 전통적으로 7월13일에서 15일(일부지역에서는 8월 13일에서 15일)에 걸쳐 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