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토리
요시다 고지로
よしだ こうじろう


난 이런 사람
 

 저는 사람을 가리는 타입입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저에 대한 인상이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를 얌전하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고, 다른 사람은 수다를 잘 떠는 녀석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스스로도 이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적극적으로 되기도 하고 소극적이 되기도 하거든요.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듯 보여질 때도 있지만 실은 무슨 말을 한 후엔 「어떻게 하지?」하고 고민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도회지보다는 시골을 좋아하고 인공적인 것보다는 자연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성장과정
 

■어렸을 때
 저는 1981년 나가사키현*3 나가사키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아기였을 때는 우유를 많이 먹었다고 합니다. 태어나서 어느정도 지나면 체중이 약간 주는 것이 보통이라는데 저는 반대로 체중이 늘어났거든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생활력이 있는 아이인데요」라는 말을 들었다나 봐요. 잘 자고 순해서 손이 가지 않는 아기였던 모양입니다.
 유치원 다닐 때는 점잖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습니다. 집이 자연에 둘러싸여 있어서 유치원 때부터 벌레 채집상자와 그물망을 들고 산에 가서 곤충을 잡곤 했습니다. 곤충도감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볼만큼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효고현*1 히메지시*2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있어 이것은 대사건이었습니다. 히메지와 나가사키는 문화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하여간 다른 점이 많이 있거든요. 우선 말이 완전히 다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성격도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환경도 달랐구요. 나가사키에서는 집 근처가 밀감밭이라 학교에서 돌아오면 혼자 곤충을 잡으러 가곤 했는데, 히메지에서는 공원은 있어도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적고 누군가의 집에 모여 텔레비전 게임을 하며 노는게 보통이었습니다.
 환경차이만 느끼고 있던 내게 반 친구가「말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나 자신의 결점에 대해서도 호되게 지적했습니다. 그런 반 친구의 태도가 당시 제게는 너무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늘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너무 답답하고 성가시다는 생각도 했었지요. 나가사키에서는 모두가 같은 입장에 있었는데, 히메지에서는 나 혼자만 낮은 입장에 놓여져 소외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전학한 해 10월에 소풍을 가서 상당히 높은 놀이기구에서 떨어져 왼쪽팔이 부러져 입원을 했습니다. 2,3주 입원한 것이 계기가 되어「보건실 등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즉 학교에는 가지만 교실이 아닌 양호실에서 쭉 지냈던 것이죠. 그 때는 양호실 선생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4학년이 되자 그 양호실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고, 그 후에는 양호실에 가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집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지요. 그런 나를 부모님은 걱정하셔서 바다나 강으로 낚시를 데려가시곤 했습니다. 여름방학에는 장기여행도 자주 갔구요. 겨울에는 신슈에 가서 처음으로 스키도 경험했습니다.
 이 무렵 내 곁에서 위안이 되어 준 게 애완동물이었습니다. 그 때 집에 있었던 건 거북이 한마리와 고양이 두마리, 그리고 개가 한마리였습니다. 덧붙이면 현재는 거북이가 네마리, 고양이가 세마리, 개가 두마리, 그리고 작은 새가 네마리 있답니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도 흥미가 있어서 여러가지 식물의 이름을 외웠습니다. 지금도 식물을 바라보거나 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화원에 들러 화분을 사곤 하지요.

■중학생 시절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반친구들 얼굴은 바뀌었지만, 툭하면 학교를 쉬고 주위에 정을 붙이지 못하는 건 변함이 없었습니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아서 부모님이나 형, 여동생과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밥은 하루에 한끼만 먹었습니다. 하루의 태반을 집에 있는 책을 보며 보냈지요. 누구와도 얼굴을 마주하기 싫어서 방에서 나가질 않았습니다. 애완동물도 가까이 하지 않았구요.
 이 무렵에는「좋은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에도 가고 안정된 회사의 샐러리맨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꿈꾸고 있는 길에서 벗어나버린 내 괴로운 심정을 알아 주기를 바라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런 말을 부모님께는 할 수 없었습니다.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될대로 되라」는 식의 자포자기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그러나 또 한편으로 매일 학교에 가는「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은 생각이 조금씩 강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전환기가 찾아왔습니다. 3학년 10월, 오랜만에 등교한 어느날의 일입니다. 영어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현내 사립고등학교 세군데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가 이치카와 고등학교였습니다. 히메지에서는 사립학교는 공립학교에 떨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사립고등학교에는 공립고등학교에는 없는 장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출석일수가 적은 제게 내신서*4를 중시하는 공립고등학교는 불리했거든요. 이치카와 고등학교에는 추천*5 제도라는 게 있어 추천 범위에 들면 내신이 나빠도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것을 알았을 때는 기뻤습니다. 이것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찬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곧바로 담임 선생님께「추천으로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고 싶다」고 상담했습니다. 나의 희망을 이해해 주신 담임 선생님은 조건을 붙이셨지요. 그것은「내일부터 착실히 등교한다」는 것이었답니다. 갑자기 등교하게 된 나를 보고「열심히 해」라고 말을 걸어준 반친구도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의 응원도 있어, 저는「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필사적으로 학교에 가고 학원에도 다녔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합격했지요. 부모님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학교에 합격한 걸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습니다.

 

고등학교 생활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나쁜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고 저는 애써 밝게 행동했습니다. 그때까지의 경험으로「얕잡아 보이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궁도부에 들어가 많은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또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재미도 알게 되었지요. 예를 들면 2개월 후에 한자검정시험을 친다는 목표를 세우고, 노력해서 합격한 후에는 또 다음 목표를 세워가며, 처음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학교생활을 열어간다는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길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치카와 고등학교 졸업생의 진로는 다양합니다. 취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문학교*6에 가는 사람도 있고, 대학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그리던 길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죠.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진취적이 되었죠. 현재까지 지각도 결석도 일체 없답니다.

■궁도부
 같은 중학교 출신 동급생한테 권유를 받고 궁도부에 들어갔습니다. 저 자신 원래 궁도에 관심도 있었구요. 3학년 때부터 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방과후 2시간정도 연습을 합니다. 현재, 초단입니다.
 궁도는 스포츠계와 문과계의 중간위치를 차지하는 무도라고 생각합니다. 궁도는 화살을 표적에 맞추느냐 아니냐 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입장하고나서 퇴장하기 까지의 예법도 중요합니다. 좀 갑갑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예법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활을 당길 때가 제일 좋습니다. 그 때는 아무 생각도 없거든요. 그 무의 상태가 좋습니다.
 궁도를 계속하면서 인내력과 지구력을 배울 수 있었지요. 그때까지 저는 어떤 한가지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게 어려웠는데, 궁도를 3년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게다가 부장으로 모두를 결집시킬 수 있었던 일은 커다란 자신감으로 이어졌습니다.「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은 장래목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요. 그때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수의사」라는 목표가 명확해졌거든요.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관해
  처음에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대해서는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치카와 고등학교가「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찬스를 내게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요. 이치카와 고등학교에는 공부에 파고드는 사람, 특별활동에 힘을 쏟는 사람, 취미에 몰두하는 사람 등 하여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저의 고정적인 사고방식을 고쳐 주었습니다.
 저는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노력하는 즐거움을 배우고 궁도부의 부장을 맡으며 예전의 나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제겐 이른바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던 학교라서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지요.

 

장래에 대하여
 

 어려서부터「수의사」라는 직업은 무척 친근한 것이었습니다. 애완동물을 많이 기르고 있었던 탓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병원에 갈 일도 많아 「수의사」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신문등을 통해 애완동물만이 아니라, 가축이나 야생동물을 보살피는 일도 수의사의 일이란 걸 알고 나서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일에 커다란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연계에 생식하고 있는 많은 야생동물은 원래대로라면 사람의 손을 빌지않고 살아갈 수 있기 마련인데, 지금은 자신들의 능력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면 납덩이를 삼켜버린 새는 스스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지요. 인간의 탓으로 상처받은 동물은 인간이 아니면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야생동물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예전에 기르던 고양이가 잡아 온 새를 돌봐 준 적이 몇번 있습니다. 다쳐서 날지 못하게 된 새가 저의 보살핌으로 건강해져서 품에서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수의사가 되어 더 많은 동물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가족, 친구
 

■우리 가족
 부모님, 두살 위 형, 두살 아래 여동생, 나 5식구입니다. 우리 가족은 다 같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조용한 편이지요. 하지만 내게 있어 가족은 항상 가까이 있는 게 당연한 존재입니다. 만약 가족이 없어진다면「나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것입니다. 중학생 때는 부모님과 별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제가 이치카와 고등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엄마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셨지요.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저도 기뻐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일이 바쁘셔서 우리들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진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그것 또한 기쁜 일이었습니다.
 엄마와는 자주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도 동물이나 식물을 좋아하셔서 말이 잘 통하거든요. 저는 기본적으로 누구와도 상담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혼자 결정해 버립니다. 하지만 엄마에게 상담조로 말하지요. 예를 들면 영어 검정시험을 치기로 작정했을 때도「영어 검정시험, 한 번 쳐 볼까?」라는 식으로 엄마에게 말하는 거지요. 엄마는 제가 이미 결정한 일임을 아는지 모르는지「그거 좋겠다」고 찬성해 주십니다. 제 기분을 존중해 주시는 거라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엄마는「우리는『네가 좋은 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단다」라고 속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내가 느낀대로구나」하고 생각했지만, 그 때는 수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싫은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아무런 기대도 없다면 그거야말로 쓸쓸한 일이겠지요. 부모님의 기대를 받는 건 오히려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친구
 제게 있어 친구는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풀이 죽어 있을 때 고민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같이 떠들어대는 사이에 고민을 잊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저는 남을 잘 놀립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놀릴 수 있는 사람, 즉 쓸데없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친구로 사귈 수 있는가 없는가의 포인트가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 고장
 

■지금 살고 있는 고장, 히메지시
 히메지라 하면 세계유산으로도 지정된 히메지성*7이 압권이지요. 지금 살고 있는「시로미다이」는 이름 그대로 성이 보이는 지대로 밤이 되면 불빛을 받은 히메지성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시 중심부로 나가면 비좁고 너저분해서 딱 질색입니다. 번잡한 도심은 별로 안 좋아하지요. 히메지성 주변은 일년내내, 이 고장 사람들은 물론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히메지성을 중심으로 늘 활기에 넘치는 고장, 그것이 히메지라고 생각합니다.

■태어난 곳, 나가사키시
 어렸을 때 살던 나가사키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게 좋습니다. 지금도 텔레비전등에서 나가사키의 거리풍경이 소개되면 금방이라도 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좋은 추억이 있기 때문일 뿐 과거는 과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때로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좋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건 현재입니다. 이건 이치카와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잡았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고지로는 어떤 사람?
 

■어머니
 나가사키에 있을 때는「공부를 잘 하는 건 당연한 일」「착한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히메지로 이사하고 공부가 좋다 싫다 말하기 이전에 학교 자체를 거부하는 고지로를 보고, 건강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 게 제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고지로는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재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열중하는 데가 있어요. 스스로 선택한 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는 정말 기뻤지요. 이제는 안심하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YK-P07참조)

■사진촬영담당 모리사키선생님
 요시다 군이 열중하고 있는 궁도는 고도의 정신 스포츠입니다. 그는 그걸 잘 이해하고 자기 성격에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을 것입니다. 요시다 군의 좋은 점은 하나의 문제에 대해, 선뜻 예스, 노를 답하지 않고, 천천히 생각하고 스스로 소화한 후 대답하는 점입니다. 이런 인물이 장차 대성할 거라 생각합니다. 궁도부에서도 신입생 때는 선배에 대한 예의범절이 요구되고, 상급생이 되면 하급생을 지도하는 입장이 됩니다. 어느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인간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자신이 처한 입장을 잘 이해하고 대응합니다. 그런 점에 나는 감탄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년간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아를 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해당하지요. 이 중요한 시기에 궁도부에서 열심히 한다는 건 인간형성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친구들
A:「타인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사람」
고지로:「그럴리가! 화 낼때는 화 냈어요. 나는 화가 나면 말이 없어지거든요.」

B:「밝은 사람」
C:「상냥하다」
고지로:「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라 가라앉으면 무겁습니다.」

D:「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할 줄 아는 고등학생」
고지로:「그런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상당히 우유부단한데….」

E:「궁도부에서 부장을 맡고 있으며 부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
F:「미움받지 않는 타입」
고지로:「사토군은 싸웠을 때『싫다!!』고 했었는데….」

G:「놀 때와 진지하게 해야 할 때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사람」
고지로:「모두 진지할 때만 봐서 그럴텐데…. 아직 멀었죠!」

H:「이 친구라면 전세계 고등학생들에게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다」
고지로:「글쎄 그럴까,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을지도….」

 


 

*1 혼슈서부, 동쪽은 교토와 오사카에 인접한 현. 에도시대(1603-1867년)에는 히메지한 등 많은 한이 설치되었다. 메이지 이후는 임해공업지대가 되어 1867년에 개항한 고베를 중심으로 일본 근대화의 선두적 역할을 해 왔다. 인구 약 5,556,000명 (2001년). 사진의 지도를 참조.

*2 혼슈서부, 효고현 남부의 도시. 14세기부터 도성의 인접도시로 발달하였으며 1698년에 완성된 히메지성으로 유명. 주요산업은 전기기계, 식품가공, 철강, 석유정제등. 인구 약 479,000명(2001년). 사진의 지도를 참조.

*3 규슈 북서부의 현 . 4개의 기복이 심한 반도와 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쇄국시대(1641-1854년)에는 외국을 향해 열려진 유일한 창구였다. 현재는 관광이나 공업, 수산업이 주요산업이다. 인구 약 1,512,000명(2001년).사진의 지도를 참조.

*4 고교입시 때 수험생의 출신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제출되는 서류. 3년간의 학업성적, 태도, 학업 이외의 실적등이 기입되어 있다. 고교입시는 필기시험 성적과 내신의 내용으로 합격, 불합격이 결정되는 수가 많다.

*5 일반적인 학과시험을 거치지 않고, 중학교 교장의 추천과 내신, 면접, 소논문이나 학업이외의 실적(스포츠 등)등에 근거하여 고교입학을 판단하는 입시제도.

*6 사회의 요청에 입각한 실천적인 직업교육, 전문적인 기술교육 등을 실시하는 교육기관. 고교졸업을 입학자격으로 하여 미용, 컴퓨터, 어학, 복지, 의료, 복식 등을 각각의 전문분야로 하는 학교가 있다.

*7 히메지시에 있으며 그 모양이 높고 희고 우아해서 백로를 닮았다하여 백로성이라고도 불린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다.

*8 남자아이는 5살, 여자아이는 3살과 7살에 해당하는 해의 11월15일에 진자에서 참배하며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비는 행사.

*9 1948~ 미스터리 작가. 고양이가 탐정역을 하는 『얼룩 고양이 홈즈의 추리』(1978년, 고분샤 발행)가 베스트셀러가 되며 인기작가가 된다. 10 1일 교대로 학급 일을 담당하는 당번. 일번이 하는 일은 아침 조회의 사회, 연락사항의 전달, 학급일지 기록등. 일직이라고도 한다. 11 결가부좌의 약식. 양발을 교차시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의 넓적다리 부위에 겹쳐서 앉는다. 12 1989년, 신초샤 발행.

*10 1일 교대로 학급 일을 담당하는 당번. 일번이 하는 일은 아침 조회의 사회, 연락사항의 전달, 학급일지 기록등. 일직(日直)이라고도 한다.

*11 결가부좌의 약식. 양발을 교차시켜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의 넓적다리 부위에 겹쳐서 앉는다.

*12 1989년, 신초샤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