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토리
미즈시마 유
みずしま ゆう


나는 이런 사람
 

 느긋하고 낙관적인 성격.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입니다. 좋아하는 일에는 혼신을 다해 뛰어들지요. 또 붙임성이 있는 편이고요. 일단 믿고 마음을 연 사람에 대해서는 속마음까지 다 털어놓지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의 기복이 심해 별 것 아닌 일에 금방 새침해지기도 하지요.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죠. 조금만 더 둔감해지면 좋겠어요.
 언젠가 친구로부터 「유는 빨강도 아니고 파랑도 아닌 보라색 같은 사람이다. 그건 여러가지 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얼마나 기뻤던지, 그 이후부터 보라색이 좋아졌어요.

 

성장과정
 

■어렸을 때
  저는 1983년 가나가와현*1 가와사키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요코하마시*2로 이사했어요. 그 때부터 쭉 요코하마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코하마를 고향처럼 생각해요. 5살 때 여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혼자였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아주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신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기 주장이 분명한 아이였던 것 같아요. 유치원 다닐 때는 얌전해서 엄마가 책을 읽어주시는 것을 듣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시절
 초등학교 때의 성적은 그리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아 성적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없었어요. 4학년 때부터 3년간 특별활동으로 리듬체조를 했고요. 선배들이 공이나 리본등을 가지고 연기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저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시작했답니다.

■중학교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 플룻을 불었어요. 하지만 1학년 2학기에 학생회에 들어가 그쪽 활동이 바빠져서 밴드부는 자주 빠지게 되었지요.
 학생회는 모두가 축제분위기로 시끌벅적한 곳이었기 때문에 아주 즐거웠어요. 제일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말리공화국의 사하라 사막 인근지대를 사막화로부터 지키려는 나무심기 활동에 기부금을 보내기 위해 여러 활동을 벌였던 일이에요. 저는 축제 때 기부금을 모으기 위해 촌극 각본을 쓰기도 했어요. 문장을 정리하거나 글을 쓰는 일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중학교에서는 축제를 위해 『백설공주』의 각본을 썼답니다. 또 할머니의 전쟁체험담을 듣고 쓴 글이 박물관에 전시된 적도 있어요.

 

고등학교생활
 

■쓰루미 고등학교에
  원래 어떤 사립고등학교의 추천입학시험*3 을 치를 예정이었어요. 그런데 코앞에 닥쳐 추천기준에 미달된 것을 알고 공립 고등학교로 진로를 바꾸어야만 했지요. 당황해서 제 성적에 가장 가까운 가나가와현립 쓰루미 고등학교에 응시하기로 결정하고 수험공부에 몰두했습니다. 어쨌든 할 수 있는 한은 해 보자고 공부한 결과 쓰루미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요.
 쓰루미 고등학교의 교칙은 그리 엄격하지 않습니다. 학교는 학생들을 엄하게 관리하지 않고 학생들의 자주성을 존중해 주었어요. 저는 쓰루미 고등학교의 그런 교풍이 좋아요. 쓰루미 고등학교 학생들은 착하고 공부도 꽤 하는 편이지만 결집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있지요. 악착같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분위기가 있어서 축제등의 행사도 흐지부지 끝나버립니다. 그런 점에 약간 아쉬움을 느끼지만 안정된 분위기에 편안함을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일
 저는 사진부에 들어 있어요. 사진부에 들어간 건 다른 부와 같이 매일 참가할 필요가 없이 자기가 마음이 내킬 때 사진을 찍고 인화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진부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어 선배들과 촬영을 나갔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카메라에 필름을 넣는 방법조차 몰랐었어요. 그런 저에게 선배들은 「무엇이든 눈길을 끄는 것을 찍어 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걸 찍어도 좋고 다른 사람이 찍는 것을 흉내내서 찍어도 좋아.」라고 어드바이스를 해 주더군요.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셔터를 누르는 소리나 감촉이 아주 기분좋게 느껴졌어요. 앵글을 바꾸는 등 여러가지 촬영기법이 있는 것도 그 때 처음으로 알았답니다. 사진을 찍는 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날은 결국 1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어요. 그 후부터 완전히 사진에 빠지게 되었지요.
 저는 인물사진 찍기를 좋아해요.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 무섭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서 꽃이나 건물등 풍경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답니다. 하지만 몇 번의 촬영을 통해 사람에게 카메라를 대는 것에도 익숙해져 사람을 찍는 일이 즐거워졌어요.
 사람을 찍은 사진은 내가 찍은 것이든 다른 사람이 찍은 것이든 보고 있으면 무척 재미있답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든가 「이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 촬영자와 피사체와의 사이에는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오고 간 걸까?」등, 여러가지 상상이 꼬리를 무는 거예요. 아마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진을 계기로 알게 된 사람도 많이 있어요. 카메라를 들면 평소엔 말을 걸 일이 없는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답니다. 예를 들면 아기를 데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기가 귀엽네요. 몇 살이에요?」라고 말을 걸기도 해요. 사진을 찍으면서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무척 재미있어요.
 사진은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요. 나 자신을 찍든 다른 사람이나 사물을 찍든 제 마음의 움직임이 사진에 나타나거든요.
어느 날 그 동안 찍은 사진을 보니 사람을 정면에서 찍거나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더라구요. 뒷모습이나 멀어서 누군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그림자 같은 것만 찍혀 있었어요. 바로 그 무렵 저는 제 자신의 기획력이나 발상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어요. 어떤 콘테스트에 출품하려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지요. 저는 좋은 아이디어라면 누구의 의견이든 적극적으로 제 사진에 수용하려 했어요. 하지만 그 때는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고 있었어요.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느정도 자각하고 있었지만 기획력이나 발상이 부족하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완성된 사진은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사진이 아닌 듯한 생각에 그 사진이 좋아지지가 않더라구요. 그 때는 자신감을 잃고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남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 제 마음이 사진에 나타난 듯 해요. 의기소침해 있을 때에 오히려 제 속마음이 사진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신기하게 사진이 잘 찍히거든요.

■대학입시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데 대학입시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늘 머리 한구석에는 입시생각이 떠나지 않는답니다. 쓰루미고등학교 학생들은 대개 2학년까지는 느긋하게 지냅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면 그 순간부터 학원에 다니는 등 마치 딴 사람같이 일사분란하게 수험공부에 임하지요.
 저는 사회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할 수 있는 대학에 시험을 볼까 해요. 저널리즘에 관심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특히 사회학을 전공하면 분야를 한정하지 않고 여러가지를 공부할 수 있을 것 같고, 제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를 분석해서 그 해결방법을 이끌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에서는 다양한 타입의 사람들과 만나고 싶으니까 가능한 한 학부가 많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요.

 

장래에 대하여
 

 장래에는 저널리즘에 관계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텔레비전의 보도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자주 보았어요.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에 대해 조사하고 그 결과를 전달한다. 그걸로 수입이 생긴다니 저널리스트야말로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하고 생각했었지요. 저는 사진을 잘 찍고 글도 잘 쓰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하려면 신문사가 제일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한사람의 인물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와 같은, 테마를 짜내서 오랫동안 매달려야 하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엘리트 코스가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즐겁게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서 평생 쭉 계속해 가고 싶어요. 엄마한테도 「결혼해서도 경제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지요. 힘든 일도 있겠지만 제가 하고싶은 일을 추구해 갈 생각이랍니다.

 

가족, 친구
 

■우리 가족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여동생과 저, 이렇게 네식구입니다. 저에게 있어 가족은 공기와 같은 존재지요. 평소에는 그다지 가족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를 경제적, 정신적으로 뒷받침해 주며 지금까지 키워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저는 자신이 접하는 최초의 사회가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이라도 자신과는 다른 인간이므로 같이 살다보면 의견이 맞지 않거나 서로 껄끄러울 때도 있지요. 서로 부딪치며 극복해 가는 일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구축해 가기 위한 훈련을 하는 최초의 사회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친구
저에게는 같은 반 친구랑 사진부의 동료등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벗들이 있답니다. 하지만 한 때 친구관계, 특히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생기는 일 때문에 무척 고민한 적이 있었지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오래 전부터 친했던 같은 반 아이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지 않게 된 거예요. 저는 이유를 몰라 「내가 나쁜 거야. 어떻게 하면 좋지?」「모두 나를 싫어하는 걸까?」하고 한동안 고민했었어요.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어 말 한마디 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지요. 상대방의 반응에 지나치게 민감해져서 이렇게 말하면 미움을 받지나 않을까, 본심을 털어놓으면 서먹해져 버리지 않을까 하고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지요. 저는 생각한 것을 분명히 그것도 강한 어조로 말해 버립니다. 특별히 악의를 가진 것도 아닌데 상대방에게는 의외로 불쾌하게 들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여자아이가 왜 저를 피하게 되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혹시 나의 말투 때문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답니다. 자신이 전혀 개의치 않는 일도 듣는 사람에 따라서는 마음에 담아 둘 수도 있나보더라구요.
힘든 상황에서도 어쨌든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부라는 도피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에 있을 때는 괴로워도 사진부 친구들과는 즐겁게 지낼 수 있었어요. 얼마 후 반에서도 새로운 친구가 생겼어요. 그 아이에게 고민을 털어놨더니 「모두가 널 싫어하는 건 아냐.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해 주더군요.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신경이 쓰일 때가 있어요. 주변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예요. 하지만 예전처럼 예민하지는 않습니다. 그건 좋은 친구를 얻은 덕분입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가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준 친구. 그런 친구가 없었다면 자신감을 되찾는 일도 사람을 신뢰하는 일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괴로웠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해요. 좋은 친구관계를 맺으려면 자기자신에게 자신감을 갖는 것, 그리고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고장 요코하마
 

 요코하마는 일본에서 두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랍니다. 자연환경은 부족하지만 무척 살기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바로 손에 넣을 수 있고 극장이나 도서관, 미술관등 문화시설도 많이 있어 매우 활력이 넘쳐나죠.
 또한 요코하마항은 150년전 쯤에 일본이 개국*4한 이래 국내최대의 무역항입니다. 그 때문인지 여러나라의 문화가 섞여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는 요코하마항 주변의 분위기를 아주 좋아했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특이한 분위기가 무척 기분좋게 느껴져요. 가끔 요코하마항 근처를 산책하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저는 요코하마를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도 살아 보고 싶고 혼자 독립해서 살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여기보다 더 재미있는 도시나 제게 맞는 마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거나 자기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다른 고장에서 생활해 보면 요코하마에 대한 인상도 달라질지 모르구요.

 

유는 어떤 사람?
 

■친구 낫짱
 유하고는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입니다. 입학식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혼자 말하고 혼자 웃기 때문에 난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야기를 해보고 둘의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예를 들면 저도 유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저는 장래에 글로 표현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데 유는 글과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서로의 내면을 느끼고 나서 친해졌습니다. 유는 여러가지 면을 가진 아이예요. 무척이나 진지할 때가 있는가 하면 폭발할 때도 있고 남들과 신나게 떠들 때가 있는가 하면 혼자 아무와도 말없이 조용히 있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자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여러가지를 깊이 생각하는 아이예요. 말투가 좀 직선적이라 본인은 악의를 갖고 말한 것이 아닌데도 오해를 받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좀 손해를 본다고나 할까? 어쨌든 유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아이랍니다.(MY-P10참조)

■어머니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그 반면 아주 섬세한 데가 있어서 남들 이야기나 행동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했었지요. 지금도 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여 이것저것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일이 있는 듯해요. 저는 유가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상처주는 일은 하지 말아라.」하고 말해 왔어요. 때문에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거꾸로 남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에도 민감해져 버린 것이겠지요. 유는 무서움을 잘 타고 신중한 면도 있지만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용기도 가진 아이랍니다. 부모로서 장래에 관해 특별히요구하는 것은 없습니다. 자립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것을 실현시켜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MY-P07참조)

■사진부 부원들
A「관심 있는 일에는 열심히 또한 진지하게 뛰어든다. 반면 쉽게 달아오르면 쉽게 식는다고 했던가.」
유「그래 맞아! 난 말이야 무엇에든 금방 빠져들고 금방 질려 버리거든」

B「의외로 변덕스러운 데가 있다. 유의 작품에서 어떤 치우침을 느낄 때가 있다.」
유「변덕스러운 데가 있는 건 사실이다. 유행을 쫓아가는 것을 좋아하고 멋진 남학생이 있으면 금방 흥분해 버린다. 하지만 유행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별개 문제야! 내 가치관에 맞지 않으면 안돼!」

C「사진부 활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 놓는다.」
유「으응, 그렇단 말이지. 스스로는 적극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데…」

D「뭐든 즐겁게 하려는 점이 좋다.」
유「우와, 기뻐라! 그렇게 생각해 주다니! 뭐든 즐거운 게 좋잖아.」

E「여장부 같은 데가 있다. 『여자니까…』라는 말을 듣는 걸 아주 싫어한다.」
유「여장부라니, 나의 어디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여자니까…』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건 그 뒤에 대개 부정적인 말이 오기 때문이야.」
(MY-P09참조)

 


 

*1 북쪽으로는 도쿄도에 인접해 있다. 현청 소재지인 요코하마는 1859년 개항이래, 생사무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현재는 무역액 일본 제일의 항만, 국제문화도시가 되었다. 고도성장기(1955-73년)이래 도쿄의 베드타운으로 현내의 택지개발이 진행되어 인구증가가 현저하다. 인구 약 8,490,000(2000년). 사진의 지도 참조.

*2 도쿄만에 면한 가나가와현의 현청 소재지. 일본 최대의 항구를 가지고 있다. 에도말기까지는 작은 어촌이었으나 1858년의 미일수호통상조약의 조인으로 요코하마는 외국과의 통상을 위해 개항을 하게 된다. 오늘날은 인접한 가와사키시와 함께 게이힌(도쿄-요코하마)공업지대의 중심이다. 인구 약 3,457,000(2001년). 사진의 지도를 참조.

*3 일반적인 학과시험을 거치지 않고 중학교장의 추천과 내신, 면접, 소논문이나 학업이외의 실적(스포츠 등)등에 근거하여 고등학교가 입학을 판단하는 입시제도.

*4 1850년대부터 60년대에 걸쳐 도쿠가와 막부(에도시대의 정권, 1603~1867)가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서양제국과의 통상외교관계를 재개한 것. 특히 1854년의 미일화친조약과 1858년의 안세(安政)5개국조약에 의거, 요코하마등의 항구를 서양제국에 개항한 것을 가리킨다.

*5 3월3일에 행해지는 여자아이를 위한 축제. 히나단을 만들어 히나인형을 장식하고 떡이나 백주(맑은 술), 복숭아 꽃등을 올린다.

*6 5, 7, 5, 7, 7의 5구체 단가의 하나. 7세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널리 왕성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7 5, 7, 5조의 17음을 정형으로 하는 짧은 시. 일본의 전통적인 시가 중 가장 많이 보급되어 있는 양식으로 지금도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해외로도 확산되고 있다.

*8 일본건축에서 다다미 방에 마련하는 장식적인 공간. 정면 벽에 서화등을 걸고 바닥 위에 꽃이나 장식품등을 놓는다.

*9 1990년대 후반, 주로 여고생 사이에서 유행한 양말. 헐렁한 긴 양말을 주름지게 해서 신는다.

*10 1985년, 후쿠인관(복음관)서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