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Your Way

생활 속에서 피어난 예술

vol.3

신문지와 천 테이프로 조각 작품을 만들다

세키구치 고타로, 사이타마 현

20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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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ung Gil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도쿄의 특별지원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세키구치 고타로 씨. 학교의 여름방학 기간 등을 이용해, 신문지와 천 테이프를 가지고 조각 작품을 제작해 오고 있다. 세키구치 씨에게 예술이란 타자와 관계를 맺는 수단이라고 한다.


신문지와 천 테이프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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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ung Gil

미술대학에 입학을 하자, 돌도 깎고 나무도 파내고, 수업 중에 웬만한 재료나 기술을 다 배웠습니다. 하지만 전부 커다란 설비가 필요하고, 무거워서 운반하는 것도 큰일이며, 돈도 들고 시간도 걸리지요.

좀 더 가볍게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귀엽네." 싶어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도, 돌로 조각을 하려면 잘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러다가 생각난 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여름방학 공작 숙제로 신문지와 천 테이프를 가지고 입체 작품을 만들었던 거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지 어머니에게 물어보면서, 제가 좋아했던 스테고사우루스를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학교 과제와는 별도로 신문지와 천 테이프로 제가 좋아하는 프로레슬링 선수를 만들어 봤습니다. 만들고 싶은 대상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손으로 신문지를 찢고 뜯어내고 꾸깃꾸깃 구겨 뭉치고 해서 천 테이프로 고정하지요. 꽤 괜찮게 만들어졌어요.

학교 다니면서 신문지와 천 테이프로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설계도는 거의 그리지 않아요. 설계도대로만 하면 만드는 과정이 재미가 없어져 버리니까요. 신문지와 천 테이프를 만지면서 손을 움직이다 보면, 차츰차츰 새로운 발상들이 떠오릅니다.

크기 때문에 뜻밖의 엔터테인먼트가

대학 졸업작품으로, 신문지와 천 테이프로 「순간사원」을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괴수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게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였는데, 그래서 제 작품도 올려다봐야 될 정도로 크게 만들었어요.

또한 작품이 크다는 것만으로도 엔터테인먼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있는 대불도 크기가 크니까 재미있어서 다들 보러 가는 거잖아요.

색은 칠하지 않고 천 테이프의 베이지색을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멀리서 언뜻 보면 나무인지 점토인지 무엇으로 만들어진 건지 몰라요. 하지만 가까이 오면 알 수 있는, 속임수 비슷한 재미를 노린 거지요.

예술은 자기의 마음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발표한다고 하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내 주장을 들어 달라고 하는 거예요. 하지만 내 이야기만 들어 달라는 것은 좀 얌체 같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들어 달라고 하는 대신에, 보는 사람이 즐거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조각 선생님의 추천으로, 졸업작품이 사진과 함께 잡지에 소개되었습니다. 수업 중에 가르쳐 주신 수법과 다른, 옆길로 샌 듯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만, 안 된다고도 하지 않고 허용해 주신 대학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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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06년 졸업작품 「순간사원」

미야케 잇세이 씨의 전시회에 발탁되다

대학을 졸업할 때, 이제 작품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조각가라는 것이 일본에 20명 정도 있으면 충분하지 않나 싶었고, 이름이 없으니 전시를 한들 누가 봐 줄지 알 수도 없거니와, 틀림없이 돈도 안 될 테니 살아갈 수도 없고 가정도 꾸리지 못 할 거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졸업 후에 도쿄에 있는 사립 특별지원학교(지적 발달이 늦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인 '아사히데 학원'에 취직해 미술 교사가 되었습니다. 교사는 일도 안정적이고, 눈앞에 있는 학생들에게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더 분명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서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전철 건널목 앞에서 전철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제작 의뢰 전화가 걸려 왔어요. 디자이너인 미야케 잇세이 선생님의 비서분한테서였습니다. 잡지에서 제 졸업작품을 보셨다고 해요. 저는 남의 작품을 보는 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미야케 잇세이 선생님을 몰랐습니다. 가족에게 이야기하니 가족이 더 흥분해서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일을 마치고 롯폰기에 있는 갤러리까지,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는 미야케 선생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 공간에 뭔가 당신의 작품을 놓고 싶다." 하더군요. 그곳은 천장이 아주 높게 뚫려 있는 전시 공간이었습니다.

"오랜 꿈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에 기분이 황홀해졌어요.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조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직 힘차게 뛰고 있던 동맥을 갑자기 딱 끊어 버린 것과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근무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작품 할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불안해서 사직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의논했더니 "이제 막 시작한 일을 금방 그만두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 일하면서 둘 다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 하더군요. 그래서 일을 계속하면서 학교가 쉬는 기간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직장에서 얻는 것도 많기 때문에 양립하기를 잘했다 싶어요. 그 후로 학교에 근무하면서 여름방학 등을 이용해 작품 제작을 계속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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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밝은 밤에 출발이다」, created for「XXIc.21세기인」exhibition at 21_21DESIGN SIGHT, Tokyo 2008

무언가 계속 만들겠다는 결의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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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ung Gil

하지만 전시회 후로는 한동안 어디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에 아내의 몸이 안 좋아져서, 작품 할 시간을 내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있으면 괴로움이 찾아오고.

그런 모습을 본 아내가 걱정을 하면서, 오카모토 다로 기념관에서 주최하는 '오카모토 다로 현대예술상'이라는 공모전 소식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번 내 보면 어떻겠느냐고요.

그러고 있을 때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2011년 3월의 일이었지요. 도쿄는 직접적인 재해를 입지 않았지만, 학교는 여진으로 유리창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인터넷 영상으로 쓰나미가 비닐하우스 밭을 휩쓸어 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예술은 비닐하우스처럼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예술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싶어서 마음이 몹시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술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이 새로운 표현을 하는 것,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뒷걸음질을 치고 있으면 안 되지요. 그렇게 마음을 고쳐 먹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나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사는 거의 모든 인공물에 사용되고 있고, 주변을 잘 보면 나사투성이예요. 나사가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의 상징으로 보였습니다.

신문지와 천 테이프로 나사 조각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을 향한 결의 표명이었어요. 실용적인 나사는 아니지만, 사람의 감성에 호소하는 듯한 나사라는 의미로, 작품에 「감성 나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감성 나사」로 제15회 오카모토 다로 현대예술상 공모전에서 다로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이 결정된 날 저녁, 아내가 제가 좋아하는 햄버그 스테이크를 만들어 주었어요. 그리고 "덕분에 힘을 얻었어."라고 말해 주더군요. 행복한 날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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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15회 오카모토 다로 현대예술상 전에서 다로 상을 수상한 「감성 나사」
©Mori Hidetsugu

장애인 예술의 즐거움을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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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ung Gil

제가 근무하는 아사히데 학원의 학생들은 발상이나 시각이 자유롭고 재미있습니다. 예를 들면 숫자 '17'의 아름다운 레터링에 강한 관심을 보이는 등, 뜻밖의 것들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지요. 그걸 보면서 저도 제 작품에 숫자 레터링을 도입했습니다.

장애인 예술이라고 하면, 일본에서는 마치 보는 사람을 울리려는 듯한, 어딘가 감동적인 분위기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 학생들의 작품은 훨씬 파격적이고 통통 튑니다. 웃기는 표현들이 참 많지요.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길 수 있도록,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예술은 타자와 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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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데 학원의 마스코트인 '아사히데가쿠엔 씨'
©You Sung Gil

예술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우리 학생들하고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한테서 예술을 빼면 아무것도 안 남아요. 친구도 많지 않습니다. 우리 학생들과 미대생, 젊은이들에게, 예술은 자기 세계를 표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이 된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습니다.

특히 우리 학생들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예술로써 이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와 아름다움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읽고 쓰고 계산하고 운동하는 건 어렵지만, 예술만큼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저와 학생들의 작품을 한데 엮은 전시회라든지,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해 보려 합니다. 올림픽에 패럴림픽이 있긴 합니다만, 지적 장애의 경우에는 참가하기도 어렵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이 없거든요. 어떤 문화적인 큰 행사에 작품이 전시되어, 나도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고 느낄 수 있는 체험을 학생들이 했으면 합니다.

지금 일본은 엠블럼 표절 문제라든지 국립경기장 건설 비용으로 인한 마찰 때문에, 자유로운 발상으로 파격적인 일을 벌이기가 어려운 분위기로 흐르고 있습니다. 좀 따분하지 않나요? 예산이 없더라도 신문지와 천 테이프가 있으면 여러 가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에게는 지금이 기회인지도 모르겠어요. 착실하게 제 작품을 계속해 나가면서, 블로그 등에 학생들의 작품에 관한 것도 올려 나갈 생각입니다.

인터뷰: 2016년 5월

구성: 야마기시 하야세

관련링크

아사히데 학원 블로그: 세키구치 씨의 학생들이 만든 마스코트 디자인을 비롯해 여러 작품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http://www.asahide.ac.jp/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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