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Your Way

전통은 새롭다!

vol.2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만들어 내다

니시다 샤토나, 아이치 현

20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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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풍뎅이나 투구벌레, 양 같은 동물에서 에이리언이나 갓파(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물 속에 살고 있는 일본의 상상 속 동물) 같은 가공의 동물에 이르기까지 종이접기 창작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니시다 샤토나 씨.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생물이나 우주의 탄생과 똑같은 의미가 있다.

이거, 학이랑 다르잖아!

창작 작품을 처음 접은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대부분이 접을 줄 아는 학. 하지만 저는 "이거, 학이랑 다르잖아!" 하는 생각을 쭉 했습니다. 학의 형태는 긴 다리와 유연한 목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 학에는 이 두 가지가 빠져 있었고, 무엇을 하고 있는 모습인지도 알 수 없었어요. 좀 더 학과 비슷한 걸 접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접어 봤습니다. 그게 성공했던 거죠."야아, 됐다. 이게 더 학 같지." 이렇게 생각했지만,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실은 무서워서 보여 줄 수가 없었어요. 예시 작품과 똑같이 접으라고 배워 왔기 때문에, 그거와 다르게 접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뭐 하는 거냐?" "예시 작품이랑 다르잖아?" 하고 웃지 않을까,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거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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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닐 때, 다 함께 수박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제 그림을 보고는 모두가 "틀렸어." 하는 거예요. 충격이었습니다.

저의 색각(적록색약)으로는 빨간색을 잘 알 수 없어서, 과육 부분을 갈색으로 칠해 버렸던 겁니다. 그때는 제가 색약인 줄 몰랐어요. 그래서 나는 본 대로 그리고 있는데 웃는다고 생각했죠. 만약 까만 연필로만 그렸다면, 옆에 있는 아이보다 훨씬 수박 같은 수박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그림은 웃음을 샀고, 옆의 아이 그림은 칭찬을 받았어요.본 대로 그리는데 웃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건지, 뭐가 되고 뭐가 안 되는 건지 몰라요. 남들과 다르게 하면 웃죠. 그래도 뭘 했을 때 그게 다른 건지 같은 건지 모르는 가운데서 계속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창작품 학을 접고 나서도 또 남들과 다른 짓을 하고 말았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겁니다.

종이접기 예술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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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작품을 접게끔 되었을 무렵에는 제가 종이접기를 굉장히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느끼고 계셨나 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요? 어머니가 「세계의 종이접기」 전시회에 데리고 가 주셨어요. 작가가 만든 작품을 처음 봤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것이 데이비드 브릴의 작품입니다. 사람이 말을 타고 있는데 약동감이 넘쳤어요. 달리고 있는 거겠죠. 그 주변에서 개도 달리고 있고요. 제목이 「여우 사냥」이었습니다.

작가 이름은 잊었습니다만, 나비가 우화하는 모습을 접은 작품이 있었는데, 그 제목이 「Life」라든지, 뭐 그런 식인 거예요. 예시 작품이 있어서 보고 접은 게 아니죠. 자기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가슴이 뛰었죠. 이런 종이접기 세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에 제 기술이 괜찮은 수준에 이르러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저의 종이접기를 어머니가 계속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종이접기를 계속하지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접었던 작품을 잘 건사해 주셨습니다. 지금 봐도 감탄스러운 것이 있어요. 예를 들면 괴도 루팡. 아주 단순한 기본형에서 시작해 모자 쓰고 망토 두른 인물을 접은 건데, 바지 주름까지 접고 꽤 잘 만들었어요.

종이접기는 아이들 놀이?

일본은 종이접기 문화가 정말 뿌리 깊습니다. 아이들도 접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중요한 문화죠. 하지만 그런 까닭에 손쉬운 아이들 놀이라는 전제를 깔고 제 작품을 보고 있어서, "그 작품 접는 법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또는 "아이들이 접을 수 있는 것을 가르쳐 달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예술을 생각해 보세요. 화가에게 그런 말을 할까요?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 생각해 낸 종이접기를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우선은 자유롭게 접어 보고요. 그 다음에 필요하다 싶으면 접는 법을 배우겠다 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창조성이 길러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학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창작은 특수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종이접기 세계에서도요.

종이접기와 멀어졌던 중고등학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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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는 종이접기를 별로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한테 종이접기가 취미라는 이야기를 좀처럼 할 수 없었어요. 제가 하고 있는 진지한 종이접기를 표현할 말이 없는 겁니다. 종이접기는 놀이이지 예술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것이 일본이니까요.

그러는 가운데, 어쩌다 반 친구가 입원하는 일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으레 "학 1000마리 접자." 이렇게 됩니다. 그럴 때 한 사람당 일정한 몫이 주어지는데, 저는 순식간에 해치워요. 그리하여 남는 시간에 학 이외의 것을 접게 되는 거죠. 그러면 손가락이 종이접기를 하고 싶어져 가지고, 10일 정도 집중적으로 접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어느 날, 다 같이 학 1000마리를 접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녀석이 "나, 종이접기 잘하거든." 하면서 그럭저럭 종이접기를 하는 거예요. 그때 제가 "더 대단한 걸 접을 수 있거든,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내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굉장하단다, 종이접기가. 이 세상에는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들이 있다고."라고 말해 버렸습니다.그러자 "그래 봤자 뭐든지 다 접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에이리언 같은 건 못 접을걸." 하며(영화 「에이리언」이 유행하고 있었다) 약을 올리는데, "지금 당장 접어 보라니, 그건......." 하고 말을 흐리고 말았습니다.집에 돌아와서 그게 속상해 접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접어지는 거예요. 다음 날 그것을 가지고 가서 보여 줬더니, "너, 대단하다!" 이렇게 되어서, 우리 반에 종이접기가 한동안 유행했었죠.

반 친구들에게는 에이리언도 접을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이 큰 충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접을지 주제를 선택하는 것부터가 재미있어요. 킹 기도라(일본 괴수 영화에 나오는 머리가 셋인 괴물)를 접어 가지고 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다들 엄청 재미있게 느꼈을 거예요.

이 에이리언이 저한테는 굉장히 커다란 사건이 되었습니다.

에이리언을 만들기 전, 저한테 창작이란 아주 여유롭게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이것을 접어야지 생각해서 접을 수 있는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게 하룻밤에 만들어진 거죠. '폭발적인 창작'이라고 하는 것을 처음 경험한 거예요.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을 해 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종이접기 작가로서의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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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을 접은 직후에, 종이접기 세계에 산업혁명 같은 폭발적인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한다든지 해서 설계를 하는 겁니다.나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으니, 이건 이길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어리석게도, 내가 종이접기로 최고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의욕도 사라지고, 진심으로 종이접기 하던 것을 그만둬 버렸습니다. 취미로는 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일은 없었던 거죠.

그런데 그때부터 25년이 지난 2004년 무렵, 끝내 마음을 참지 못하고 다시 종이접기 작품을 진지한 마음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윽고 2007년쯤엔 문득 작품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도망치는 짓은 그만두자 싶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종이접기를 깊이 사랑해 왔으니까요. 제 직함에 '종이접기 작가'라고 써 넣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가 종이접기로 작품을 만들어 낸다기보다, 나는 작품의 출현을 돕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음이 되어 갔습니다. 종이에는 자기가 되고 싶은 모양이 있어요. 억지로 접기를 거듭하면 어떤 작품이든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접는 사람 마음대로 억지로 접으면 종이가 힘들어요.

예전에 비해, 종이가 되고 싶어 하는 모양을 잘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손가락과 종이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행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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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종이접기는 예전부터 시행착오의 반복입니다. 접는 방법을 처음부터 알 수는 절대 없죠. 접어 가는 중에,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종이를 펴서 검토하고, 새 종이로 다시 접습니다. 접어 나가다가, 역시 아니구나 싶으면 다시 종이를 펴고, 그리고 검토하고, 다시 한번 새 종이로 접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거죠.

이것이 생물의 진화와 비슷합니다. 한 장의 종이에서 점점 형태가 만들어져 가는 것 자체가, 세포가 분열해 생명체가 태어나는 것과 무척 닮아 있죠. 우주의 탄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끝에 닿을 듯 닿지 않는 '완성

"됐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도 그것이 완성된 형태는 아닙니다. 그 후에도 좀 더 잘 만들려고 몇 번이고 다시 접죠. 대부분의 작품이 지금의 형태가 되기까지 몇 년씩 걸린 겁니다. 그래도 그것이 완성된 형태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등학교 때 처음 접은 에이리언도 여기까지 오는 데 20년 걸렸습니다.고등학교 때는 손가락을 제대로 접어 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그런데 40세가 되어 진심으로 접어 보니 손가락이 나오더군요.

그럴 때 생각하죠. "못 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뿐이 아닌가, 도전해 보지 않았던 것뿐이 아닌가 하고요.

다양한 작품을 접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는 못 한다는 생각에 빠져 도전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요. 하지만 막상 마음을 먹고 해 보니 되죠.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는데도, 아직도 자신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의 능력을 뛰어넘는, 그런 재미있는 영역이 있습니다. 못 접는다고 자기 스스로 믿고 있는 것일 뿐, 우주에서는 사실은 그 어떤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다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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