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Way Your Way

말의 힘

vol.1

일상을 잡아 내다

반쇼(고등학교 2학년, 17세, 야마나시 현 거주)

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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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쇼 군은 2012년 8월에 개최된 전국고교종합문화제* 「시의 권투」**에서 1, 2회전을 이기고 올라와 우승을 차지했다. 1, 2회전에서는 준비해 간 시를 읊지만, 결승전에서는 심사위원이 시제를 주면 그 제목으로 즉흥적으로 시를 읊는다. 반쇼 군에게 주어진 시제는 「댐」.

댐과 관련해 자신의 마음속을 표현해 낸 반쇼 군의 시에 행사장이 술렁거렸다. 고등학교 문예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쇼 군. 평소에 어떻게 말과 마주하며 지내고 있을까?

* 전국고교종합문화제(All Japan High School Culture Festival):고등학생의 창작 활동을 향상하고 상호 이해를 도우려는 목적으로, 예술 문화 활동을 발표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고등학생들의 축제. 연극 부문, 미술・공예 부문, 향토예술 부문, 사진 부문 등으로 나누어 매년 개최하고 있다. 문화청 등이 주최한다.

** 「시의 권투」: 권투 경기를 하는 링을 비유한 무대에서 두 사람 또는 두 단체가 시를 낭독하고, 어느 쪽 시가 더 관객들의 마음에 와 닿았는지를 겨룬다.
「시의 권투」공식 사이트 http://www.jrba.net/


실은 「시의 권투」에 나갈 때까지 시를 쓴 적이 없습니다. 평소에는 단가와 소설을 쓰고 있어요.

문예부의 고문 선생님한테 「시의 권투」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본래 마지막에 몰려서야 쓰는 유형이긴 한데, 시가 잘 써지지 않아서 힘들었어요. 그때도 바로 전날 써서는 도쿄에 가는 전철 안에서 읽고 고치고, 행사장에 도착해서도 또 고치고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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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한 시의 원고

결승전에서 심사위원이신 구스노키 님이 「시제는 『댐』!」이라고 하자마자 곧바로 (시합 시작을 알리는) 종 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때 다니카와 슌타로 작사의 합창곡인 『봄에』의 한 소절, 「마음의 댐으로 가로막혀」가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중학교 때 합창대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반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죠. 이것을 실마리 삼아 어떻게 시를 지어 보자고 생각하고 처음 1행을 읊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긴 문장을 쓰고 압축하고, 또 쓰고 압축하고를 되풀이했습니다. 어떤 시를 읊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어요.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시를 읽어 보면, 그때 참 잘 썼네 싶습니다. (웃음)

종합문화제 「시의 권투」 결승전. 링 위에서 「댐」을 읊고 있는 반쇼 군.

「댐」

누군가가 말했다
내 마음은 댐에 가로막혀 있다고
나는 내 안을 보았다
댐은 없고
물웅덩이밖에 없었다
나는 안을 보았다
사실은 물웅덩이 같은 게 아니라
더 깊은 구멍이 거기에는 뚫려 있어,
혹시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댐보다도 더더욱 더 깊은 그런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안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나는 멈춰 섰다
나는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다만 나 자신을 겁내고 있었다
나는 다만, 그저 나 자신 안에 물웅덩이를 만들려 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나는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안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이 진짜, 진짜 물웅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나는 물웅덩이를 들여다볼 수 없었다
만약, 만약 그것이 정말 나 자신이고
만약 그것이 신발의 밑바닥조차 적시지 못할 물웅덩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시는 뭐든지 다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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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문화제에서 우승을 해서, 2012년 10월에 요코하마에서 열린 「시의 권투」 전국 대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에는 각 지구 대회에서 우승한 16명이 참가했어요. 고등학생은 저를 포함해서 2명이었고 나머지는 사회인이었습니다.

여러 시를 들으면서, 「참 대단한 시다.」 싶은 적도 있었고 시의 힘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시를 쓸 수 있으리란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물론 대회를 앞두고 시를 쓰긴 했지만, 저한테는 그것은 시가 아닙니다. 전국 대회에서는 1회전에서 바로 졌고요.......

저한테 시를 쓰는 게 어려운 이유로는 자유도가 너무 높다고 하는 점이 있습니다. 단가는 31 글자로 정해진 틀에 맞춰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시는 뭐든지 다 되거든요. 음악으로 말하자면, 록인지 클래식인지 장르를 정하지 않은 채 연주해 보라고 하는 듯한 느낌이에요. 록이라는 장르가 정해져 있다고 하면, 그 안에서 프로그레시브를 하겠다 또는 펑크를 하겠다 결정을 해서, 자신의 연주를 하든 곡을 만들든 할 수가 있을 거라는 거죠. 저한테는 정해진 틀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게 더 좋습니다.
하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를 쓰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장르를 확실히 구축하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아직 장르가 만들어져 있지 않은 거죠.

저는 단가든 시든 머릿속에 소설, 그러니까 스토리를 구성한 다음에 설명 부분을 삭제하면서 만들어 나갑니다. 다시 말해 소설이 전체라고 할 때, 거기서 말을 계속 삭제해 나간 것이 시이자 단가인 거죠.

짧아지면 짧아질수록 하나의 말에 걸리는 비중이 점점 커져 갑니다. 단가에서는 모든 말이 다 무거워요. 하지만 시는 무게를 재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각각의 매력

전에는 단가와 소설 사이에 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와, 시는 그런 중간 같은 데가 아니라 좀 더 다른, 엉뚱한 곳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단가는 생활의 일부

단가와 소설 모두 고등학교 문예부에 들어와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단가를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쓰는 방법이나 규칙을 배우고 나서 쓰는 게 아니라, 우선 써 보고 그것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저의 방식이에요. 선배들한테도 지식만 쌓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제가 자주 하는 것이, 단어를 적은 카드 100장을 섞어 놓은 다음에 1장을 골라, 거기에 쓰여 있는 단어를 시제 삼아 단가를 짓는 거예요. 하나 짓고 나면 그 단어를 지우고 다시 새 단어를 쓰고, 다시 뒤섞어 놓고 1장 골라 단가를 짓고, 이런 걸 되풀이하는 거죠. 라쿠고에 산다이바나시*라는 게 있는데, 그걸 흉내 낸 겁니다. 재미있어요.

단가를 지음으로써 제 말의 다양성이 늘어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아리 활동을 할 때, 정해진 시제를 놓고 각자 단가를 짓고는, 그것을 한데 모아 어떤 게 좋은지 다 같이 투표를 해요. 그러고는 하나하나 이건 여기가 이렇다 저건 저기가 저렇다 하며 함께 비평을 해 나갑니다. 그런 것을 계속해 가는 사이에, 어휘도 늘고 불필요한 표현도 없앨 수 있게 된 것이겠죠.

지금은 뭔가 계기가 생겼을 때는 물론이고 시간이 날 때면 단가를 짓습니다. 단가가 생활의 일부가 된 거죠.

과학실에 놓고 온 게 혹시 있다면, 염산의 손이여 아연을 구해라.【시제:염산】

괭이밥을 밟고서 붙잡혀 버린 강철 우리 안이라면 즐거울지도.【시제: 강철】

* 산다이바나시: 라쿠고의 한 형태. 무대에서 연기할 때, 관객에게 3가지 제목을 받아서 그것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라쿠고를 연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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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고 싶은 것

단가에는 「깜짝 단가」와 그렇지 않은 단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읊은

동해의 작은 섬 바닷가 흰 모래톱. 나, 눈물에 젖어 게와 놀다.

는 후자예요.

깜짝 단가라고 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가인(단가를 짓는 사람)인 사이토 사이토의

비 오는 길 걷노라니 무엇일까요? 쏟아내 버려진 이것은 된장.

을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길 위의 된장」이라니 깜짝 놀랄 일이죠.
저는 양쪽 다 좋아하지만, 깜짝 단가를 짓고 싶어요.
이질적인 것을 잘 갖다 앉힌, 그런 단가를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쓰고 싶다

저는 스가 시카오가 쓴 노랫말이 꽤 마음에 듭니다. 보통 노래를 보면 클라이맥스에서 여자에게 고백을 하곤 하는데, 스가 시카오의 경우에는 여자한테 차이고 나서 마지막 전철을 타고 가다 잠이 들어 버리는, 그런 구석이 있어요.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뻔하게 흐르는 경향이 좀 많은 것 같아요.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대부분 범인이 발견되어야 하고, 연애소설에서는 힘든 일이 있어도 어떤 일정한 행복이 손에 쥐어져야 하고, 지구는 대부분 지켜져야만 하고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하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중학교 때 어느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나서부터였어요. 현실 속에서 마무리가 안 지어지면 소설 속에서도 마무리를 짓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마무리를 짓는 순간 그 이야기는 만들어 낸 게 되어 버린다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구나 싶었죠.

주인공은 고난에 부딪혀도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데요. 그렇게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하는 것은 「사람」이지,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뀐 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수습이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으로서, 부정적인 것은 부정적인 것으로서, 그렇게 써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가 시카오의 「클라이맥스」

새로운 나를 발견하다

문예부에 들어와 실제로 글을 써 보면서 뜻밖에 글을 잘 쓴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웃음) 글을 쓸 때 뜻밖에 진지해진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죠. 보통 때는 불성실한 놈이거든요, 제가.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면 어떻게든 우스운 소리를 하고 싶어 하고요. 그런데 글로는 고등학생 대상의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하고, 비교적 열심히 하는 면이 있어요. (웃음)

그리고 제가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때

곰곰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때 감상문을 잘 썼어요. 학교 숙제일 때도 있었고 부모님이 쓰라고 하신 적도 있었고....... 감상문을 적당히 쓰면 부모님이 굉장히 화를 냈기 때문에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랬기 때문에 문장력이 크게 좋아진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시켜서, 에도 시대의 짤막한 옛날이야기 같은 것들을 요약해 본 적도 많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갖고 있는 교양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울면서 감상문을 쓰곤 했습니다만, 책 읽기나 글 쓰기가 싫어지지는 않았어요. 역시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네요. 감상문은 미워해도 책은 미워하지 않는다. 감상문은 미워해도 엄마는 미워하지 않는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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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를 방문해 「생각보다 작네. 훨씬 크다고 느꼈었는데.......」 하는 반쇼 군.

「말」로써 가능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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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일이 꼭 필요하잖아요. 상대방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게 있을 때, 그것을 100%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저는 말을 사용합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건 굉장히 손해 보는 일이잖아요.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전달한 다음에 생기는 다툼이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다툼이라면, 그것처럼 바보 같은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그런 일이 있어요. 서로 이야기도 해 보지 않았으면서 저 녀석은 틀렸다느니 하는....... 진짜 멍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의식적으로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잘 전달하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꿈

현재 목표는 긴 소설을 한 편 완성하는 거예요. 지금까지 가장 길게 쓴 것이 원고용지 30매 정도인데, 200~300매 정도를 써 보고 싶어서 지금 쓰고 있는 중입니다. 한 편 쓰고 나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쉴 거예요. 3학년이 되면 입시 공부에 집중해야죠.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 쓰기 시작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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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 『사양』과 『손자』. 되풀이해서 읽고 있다. 다자이의 문장을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사양』 정도의 길이가 되면 다 읽고 났을 때 첫 부분이 생각이 안 나기 때문에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읽을 수가 있다는 것. 병법에 관해 쓰여 있는 『손자』는 앞부분에는 꽤 좋은 말이 쓰여 있는데 갈수록 점점 바보 같아져서 마무리가 아주 간단하다는 게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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